[사진-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출처-뉴시스][이코리아]「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논의가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복되는 재난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기본 법체계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법안은 5년 가까이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채 본회의 상정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20년 말부터 논의가 시작된 「생명안전기본법」은 2024년 3월 발의된 이후 공청회까지 마쳤지만, 현재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산하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 회부된 뒤 심사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다. 상임위 단계에서 논의가 멈춰 서면서 법안은 사실상 ‘대기 상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세월호 참사 이후 반복적으로 제기된 재난 대응 체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기존 '관리 중심' 체계를 '권리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주요 내용에는 재난 예방을 위한 안전영향평가 도입, 사고 발생 시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피해자의 진실 접근권과 배상·회복 권리 보장, 추모와 기록을 위한 국가 책임 명시 등이 포함돼 있다.
다만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쟁점은 적지 않다. 가장 핵심 논란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조사기구의 상설화 여부다. 기존 감사·수사 체계와의 기능 중복, 권한 충돌 가능성이 함께 제기된다. 국가의 재난 예방책임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민간 영역에서 발생한 사고까지 포함할 것인지도 논쟁 지점이다. 정책과 개발사업 전반에 안전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방안은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규제 확대 우려와 맞닿아 있고, 피해자 권리 보장의 수준은 재정 부담 문제와 맞물려 의견이 엇갈린다.
이 같은 쟁점에도 불구하고 법안이 실질적인 심사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명안전기본법」을 대표 발의한 용혜인 의원 측은 “국회와 행정안전부, 시민사회가 수차례 논의를 거쳐 수정안을 마련한 상태”라며 “현재는 국민의힘 소위원장이 맡은 법안심사제2소위원회 심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4·16 국민생명의 날까지 법안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여야 모두 책임감을 갖고 조속한 심사에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를 맡은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실은 법안이 특정하게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에 선을 그었다. 서 의원 측은 “해당 법안은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된 여러 법안 중 하나로, 앞서 접수된 법안들에 따라 순차적으로 심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정 법안만 별도로 우선 처리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개별 법안의 쟁점을 따로 논의하는 단계가 아니라, 소위 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검토가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부연했다.
시민사회의 시각은 더 단호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6일 성명을 통해 법안 장기 계류를 규탄하며 국회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민변은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행안위 법안심사2소위가 이유 없이 심사를 미루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직권상정 등을 통해서라도 세월호 12주기 전까지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개별 사건마다 특별법이나 한시적 기구를 통해 대응하는 방식을 반복해왔다.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에서도 같은 패턴이 되풀이됐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재난·사고 원인 조사를 개별 사건 대응이 아닌 상설·독립 체계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 스웨덴 등은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전문 조사기구를 두고 있으며, 이들 기관은 수사·규제 기관과 분리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의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육상·항공·해상 전반의 교통사고를 조사하는 대통령 직속 상설 기관으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부에 안전 개선 권고를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화학사고를 담당하는 화학안전조사위원회(CSB) 역시 규제기관과 분리된 독립 연방기관으로,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제도 개선을 권고하는 기능에 집중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단일 기관인 사고조사청(SHK)이 항공·철도·도로교통은 물론 화재·건설·군사 사고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통합 조사한다. 미국이 분야별로 조사기관을 별도로 두는 방식과 달리, 스웨덴은 하나의 기관이 사고 유형 전반을 포괄하는 구조다.
운영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조사 결과가 처벌이 아닌 재발 방지를 위한 권고로 이어진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를 통해 제도 개선과 정책 반영까지 연결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전문가들도 해외와 다른 현행 재난 조사 체계 자체의 구조적 한계를 문제로 지목한다. 김의수 국립한국교통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등 대형 재난이 반복됐지만, 사고 원인에 대해 국민이 신뢰할 만한 수준의 규명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원인 규명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는 것은 모순적인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체계는 부처 중심의 ‘셀프 조사’와 한시적 조사기구 운영으로 인해 조사 연속성과 전문성 축적이 어렵다”라며 “피해자가 직접 원인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권리 보장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이고 상설화된 조사기구 설치가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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