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리뷰 최산 기자] 충북도 생명안전기본조례 제정을 위해 오송·제천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도와 도의회, 학계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충북도의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1일 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충북도 생명안전기본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주제발표는 견승엽 청주대 교수가 먼저 맡아 생명안전기본법 시행에 따른 충북도 생명안전기본조례의 제정 방향을 발표했다. 그는 "위기 대응 매뉴얼은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위에 얼마나 빨리 보고하느냐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며 "재난 초기에 대응력이 부족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견 교수는 "매뉴얼이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중앙부처 매뉴얼과 충북도 매뉴얼과 청주시 매뉴얼이 5분·10분·30분 안에 무엇을 할지 서로 맞물려 있어야 한다"며 "매년 매뉴얼을 교차 검토하는 체계를 조례에 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사고 내용을 외부에 공표하기 전에 유가족에게 먼저 묻는다"며 "이런 제도를 받아들이면 유가족이 사고 수습 과정을 더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성 원광대 교수는 조례의 설계 방향과 집행 요건을 발표했다. 그는 "법에 명시된 지자체 의무만 봐도 사실상 전담 부서 하나가 생기는 수준"이라며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도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재정 조항을 예산 범위 안에서 지원할 수 있다는 정도로만 두면 집행 여부가 재량으로 남는다"며 "그러면 안전 사업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소관 부서가 없고 예산이 없으면 계획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점검할 대상도 사라진다"며 "결국 조례가 사문화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캠페인을 몇 번 했느냐가 아니라 사고와 피해 규모의 변화 같은 결과 중심 지표로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정토론에서 박진희 도의회 교육위원장은 "오송 참사 당시 건설환경소방위원회 소속이었는데 참사 직후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조치가 이뤄졌는지 자료를 요청했더니 의원님이 그게 왜 필요하냐는 말이 돌아왔다"며 "그게 당시 도의 재난 대응 수준을 보여주는 일면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해 행정사무감사에서 도가 침수 우려 지하차도로 지정해 놓고도 한 번도 사전 점검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며 "점검 계획만 있고 점검은 없는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조례에 담아야 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피해자 통합 지원 창구 설치와 전담 지원자 지정은 행정기관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며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여야 한다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송 참사 때 여러 기관이 있었지만 누가 판단하고 누가 통제를 지시할지 작동하지 않았다"며 "재난 유형별로 최종 판단권자가 누구고 부재 시 누가 대신 판단하는지까지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도와 시가 정신과 진료비를 지원하면서 진료비 세부 내역서와 처방전을 당사자 동의 없이 수집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며 "피해자를 돕겠다는 제도가 피해자의 가장 내밀한 정보를 들여다보는 통로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표준조례안이 나온 뒤 다시 개정하지 않도록 서두르기보다 완성도 있게 만들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의수 국립한국교통대 교수는 "세월호부터 이태원과 무안 여객기 참사까지 유가족들은 사고가 왜 났는지 아직도 모른다"며 "사고가 나면 국가가 원인을 밝혀 국민에게 보고하는 게 정상인데 우리는 유가족이 거리로 나와 원인을 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영향평가 등은 시행이 뒤로 밀렸다"며 "조례는 당장 피해자 지원과 유가족 지원 그리고 정보 공개부터 체계를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구창민 충남연구원 초빙책임연구원은 "지난해 1월 도의회에서 제천 화재 참사 유가족 지원 조례가 다른 사망 사고와의 형평성과 사법부 판단과의 정합성 문제로 부결된 것으로 안다"며 "기본조례는 사고 이전에 지원 범위와 대상을 정해둬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풀 수 있다"고 말했다.
구 연구원은 "시행령을 기다리는 동안 참사가 나면 지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피해 지원 조항은 서둘러 제정하고 이후 개정하는 단계적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도지사의 의회 보고는 명문화하지 않으면 약식 업무보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보고 내용과 시기를 행정사무감사와 예산 심사 주기에 맞춰 조례에 적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피해자 참여는 권리지 의무가 아니"라며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조례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묵 충북도 안전정책과장은 "법이 대통령령에 13개 정도를 위임하고 있어 조례는 시행령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시행령 동향을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조례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법 20조 기억·추모와 21조 공동체 회복 사업을 두고 "사고 유형이 다양하고 이해관계도 달라 도민 공감대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며 "계획 수립 단계부터 유가족과 공무원 그리고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 운영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은경 오송지하차도참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조사에서 유가족과 생존자의 90%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이고 80% 이상이 우울과 불안을 호소했다"며 "경제 회복은 참사 이전의 78% 수준에 그쳤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법과 조례를 만드는 역할을 한 이전 참사 피해자들이 정작 권리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피해자 권리 적용을 조례 제정 이후로 한정하는 조항은 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지원 제도를 찾아다니며 피해를 반복해서 설명하고 입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행정이 먼저 필요를 파악해 연결하는 통합 지원 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조례 제정 이전이라도 오송 참사 피해자를 대상으로 권리 보호 시범사업을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참사 당시에도 매뉴얼은 있었지만 시행되지 않았다"며 "조례를 만드는 것만큼 제대로 시행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명안전위원회를 만들어 점검하고 그 위원회에 유가족이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오송지하차도참사 생존자협의회 대표 A 씨는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의무화하고 강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결국 수장의 의지 때문"이라며 "참사 뒤 지자체장은 우리를 빨리 잊고 싶은 숙제로 봤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가 가해자라면 그 집행부가 피해자 지원을 맡는 게 맞느냐"며 "조례가 시행된 뒤 그 수장이 이를 이행할 의지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오송은 다른 참사와 달리 특별법이 없다"며 "사회적 합의에 따라 법 시행 이전 참사 피해자에게도 권리를 적용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불안과 수면 장애와 두통처럼 정신적 고통은 몸으로 나타난다"며 "심리 치료와 정신과뿐 아니라 신체 의료비까지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수사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수사에서 나온 정보는 가장 빠르게 공유해야 한다"며 "지금까지는 뉴스나 시민대책위를 통해 들었다"고 말했다. A 씨는 피해자 의료정보 보호 조항도 조례에 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류건덕 제천화재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처음 사고 조사 과정은 우리가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쪽 사람들로만 구성됐다"며 "처음부터 피해자가 함께해야 조사의 신뢰성이 담보된다"고 말했다. 이어 "추모식 때 천막은 빌려주지만 꽃과 초청장은 9년째 유가족이 직접 마련하고 있다"며 "이제는 지자체가 추모식을 준비해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 "학생들이 추모식에 함께해 교훈이 이어지도록 교육청이 참여할 근거를 조례에 담아 달라"고 말했다.
종합토론에서 김혜란 오송 지하차도 참사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피해자들은 3년 동안 무엇이 부족했는지 가장 생생하게 알고 있다"며 "도와 도의회 그리고 유가족과 생존자와 지역 전문가가 함께 조례 내용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 참사의 추모 비용을 도와 시 중 누가 분담할지 기준이 없다"며 "그래서 피해자들이 계속 돌아다니며 호소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빨리 만드는 것보다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공청회와 TF를 구성해 다양한 의견을 담아 달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조례 제정 이전 참사 피해자에 대한 권리 적용과 개인정보 보호, 실효성 있는 이행 점검 장치 등이 향후 도 생명안전기본조례안에 실제 반영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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